전세가 편해서 내 집 마련을 미룬다? – 변화를 거부하는 '현상 유지 편향'의 대가
전세는 목돈을 맡겼다가 그대로 돌려받으니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에요. 저도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취득세나 재산세 같은 세금 걱정 없고 집값 하락 위험도 없는 전세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믿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니 그 편안함 뒤에는 자산 격차라는 무서운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왜 우리가 익숙한 주거 형태를 바꾸지 못하는지, 그리고 현상을 유지하려는 선택이 장기적으로 어떤 경제적 차이를 만드는지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1. 익숙한 환경에 안주하려는 심리적 기제와 선택의 관성
사람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때 느끼는 불안감을 이익에 대한 기대감보다 훨씬 크게 받아들입니다. 이를 행동 경제학에서는 현상 유지 편향이라고 부르는데, 현재의 전세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다면 굳이 큰 빚을 내어 집을 사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성향을 뜻합니다. 전세 제도는 매달 나가는 월세나 대출 이자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매우 안전하다는 착각을 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적 안도감은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자산 가치가 상승하는 구간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2. 화폐 가치 하락과 실물 자산의 상대적 가치 변동 분석
전세금은 시간이 지나도 숫자는 그대로이지만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치는 계속해서 줄어듭니다. 시중에 풀리는 통화량이 늘어날수록 화폐의 구매력은 떨어지며, 이는 곧 실물 자산인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10년 전의 전세금 3억 원과 지금의 3억 원은 시장에서 가지는 힘이 완전히 다릅니다. 통계청의 소비자 물가 지수와 주택 가격 지수를 비교해 보면, 장기적으로 주택 가격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을 상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세를 고집하며 목돈을 현금 형태로 묶어두는 것은 화폐 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을 그대로 감내하겠다는 선택과 다름없습니다.
3. 전세 보증금의 기회비용과 자본 수익률의 상관관계
우리는 전세금을 돌려받기 때문에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거액의 자금을 실물 자산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은 포기하는 셈입니다. 만약 전세보증금을 내 집 마련의 종잣돈으로 활용하여 자산 가치 상승분을 누렸다면 그 차익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 됩니다. 하지만 전세로 거주하면 내 돈을 활용해 자산 가치를 올리는 주체는 내가 아닌 집주인이 됩니다. 저도 예전에 전세로 살며 모은 저축액보다 그 기간 동안 오른 집값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만드는 구조를 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4. 주거 안정성 결여에 따른 심리적 비용과 이사 비용 계산
전세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2년 혹은 4년마다 거주지를 옮겨야 할 위험이 존재합니다. 집주인의 실거주 요건이나 전세금 증액 요구는 주거의 안정성을 크게 해칩니다. 이때 발생하는 이사 비용과 중개 수수료 그리고 새로운 집을 구하기 위해 쏟는 시간과 에너지는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매몰 비용입니다. 10년 동안 세 번만 이사를 해도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 발생하며, 이는 고스란히 가계의 손실로 이어집니다. 반면 내 집을 소유하게 되면 이러한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주거의 안정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생애 설계가 가능해집니다.
5. 대출을 활용한 레버리지 효과와 자산 증식의 원리
내 집 마련을 미루는 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대출입니다. 하지만 적정한 수준의 대출은 자산 증식을 가속화하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전세는 대출을 받아도 그 이자만 지불할 뿐 자산 가치 상승분은 가져올 수 없지만, 내 집은 대출 원금을 갚아나가는 과정이 곧 강제 저축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한국부동산원의 연도별 아파트 매매 가격 지수를 살펴보면 부침은 있으나 장기적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시대에 부채의 가치는 줄어들고 자산의 가치는 오르는 원리를 이해한다면, 무조건적인 무부채 상태가 반드시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6. 객관적 지표를 통한 매수 적기 판단과 심리적 극복 방안
현상 유지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막연한 두려움을 수치화된 데이터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해당 지역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인 전세가율을 확인하고, 향후 3년 내 입주 물량 지표를 점검하여 공급 과잉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시장이 저평가되어 있다는 데이터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세가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경제적 판단이 아닌 심리적 오류에 빠진 상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대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산 격차라는 결과로 돌아옵니다. 현재의 편안함이 미래의 나를 가난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할 시점입니다.